헤이리, 자연과 인간과 예술

지난달 중순 헤이리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리는 2010 파주 출판도시 책 잔치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수도권에 많이 비가 와서 행사가 취소돼 출판도시에서 가까운 헤이리에 한 번 더 갔습니다.
자전거로 한 바퀴 돌까 하다가 둘째 아이가 헤이리 안내를 해주는 전기차를 타보자고 해
큰아이와 셋이 전기차에 타고 대략 40분간 헤이리 안내를 받았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간 것이 아니라 사진도 흔들리는 전기차 위에서 부족한 광량에 가까스로 찍었고
운전자께서 해 주시는 설명도 메모나 녹음도 못 하고 퇴화하는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습니다.

안내를 받는 동안에도 계속 느낀 것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마을이라서 그런가
너무나 낯설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습니다.

헤이리의 기본 철학이라면 자연과 인간이 예술을 매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짧지만 40분 안내를 받으며 예술을 감상했어야 하고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느꼈어야 했습니다.

오래된 느티나무를 자를 수 없어 건물에 구멍을 내 나뭇가지가 계속 자랄 수 있도록 한 금산 갤러리.
Keumsan Gallery, Heyri (헤이리 금산갤러리)

페인트의 독성을 없애고 친환경적 건축 자재를 사용하기 위해 예술인 마을답지 않게
화려한 색채 없이 시멘트벽을 그대로 두거나 녹슬어 검게 변한 듯한 소재를 쓴 건축물.
Art-Service Studio, Heyri (헤이리 아트서비스 영화촬영소)
Jazz Club Story Ville, Heyri (헤이리 재즈클럽 스토리 빌)
Gallery MOA, Heyri (헤이리 갤러리 모아)

나이도 500년 이상 되었고 가지에 커다란 종양이 생겼지만, 성심껏 돌봐 이제는 건강해졌다는 느티나무.
Zelkova, Heyri (헤이리 느티나무)
Zelkova, Heyri (헤이리 느티나무)

튼실한 나무 두 그루를 차마 벨 수 없어 계획된 건물을 작게 지었다는 북카페 반디.
Book Cafe Bandi, Heyri (헤이리 북카페 반디)

그 외에도 많은 장소, 예술가, 예술품들 모두가 하나하나 깊은 뜻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인간과 자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인간과 자연과 예술을 들었지만, 그것들의 조화를 느끼지 못했을까요?

제가 수준이 낮은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감성이 메말라 있는 걸까요?

어쩌면 그들은 예술을 통한 인간과 자연을 조화를 꾀한다는 핑계로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들어 특권의식을 누리려 한다는 삐뚤어진 저의 편견 때문일까요?